책소개
‘난세는 영웅을 낳는다.’ 육조(六朝) 시대는 중국 최대의 격변기이며, 그 시대 초기에 전개되었던 위진(魏晉) 교체기는 난세 중의 난세다. 한나라 말기 조조가 조정(朝廷)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온갖 권세를 누릴 때 이미 위(魏)나라의 탄생은 예견되었다. 그가 죽은 해(220) 연말에 그의 아들 조비(曹丕)가 위나라를 건국했다. 그러나 위풍당당했던 조씨(曹氏) 일가도 30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고평릉(高平陵)의 난(249)을 주도한 사마의(司馬懿)에 의해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서기 265년에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司馬炎)이 진(晉)나라를 건국했다. 이런 와중에 시대가 만든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역사의 주목을 받았고, 그중에서도 혜강(嵇康)과 완적(阮籍)이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마씨의 정권 탈취 상황을 맞이해 혜강은 탈속(脫俗), 완적은 기행(奇行)으로 그들의 칼날을 피하고, 천부적인 글재주와 이상적 삶의 지혜를 대외에 표출하며 명철보신(明哲保身)의 삶을 영위했다. 하지만 위나라가 채 망하기도 전에 혜강은 형장의 이슬로, 완적은 병으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 결과 혜강은 재야의 고수이자 영웅적인 자태를 풍미한 인물로, 완적은 하급 관리이자 방탄(放誕)적인 태도로 일관한 기인(奇人)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었다. 특히 혜강이 사형 집행 전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런 두려움 없이 <광릉산(廣陵散)>을 연주할 때의 모습은 가히 당대의 영웅적인 자태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전하는 혜강의 시는 모두 60수로 사언시 30수, 오언시 12수, 육언시 10수, 악부시 7수, 소체(騷體)시 1수 등이다. 산문은 모두 15편[서(書) 2편, 부(賦) 1편, 논(論) 9편, 기타 3편]이 전하는데, 전체 문학 작품에서 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시는 대부분 위진 교체기의 정치적 혼란과 현실적 가치, 그리고 예교 윤리를 표방하며 탄생한 사마씨 정권의 부당한 정치적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 본래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자연과의 일체화를 지향했고 시공간의 초월적 존재인 신선을 앙모하며 양생론을 바탕으로 이상 세계인 신선 세계로 접근을 시도했다.
200자평
죽림칠현의 영수 혜강의 시를 모두 모았다. 권력과의 야합을 단호히 거부하고, 시 읊고 금 튀기며 은자의 삶을 추구했다. 혼란한 세상을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안빈낙도하자고 노래하는 그의 시에는 고결한 성품이 그대로 묻어난다.
지은이
혜강(嵇康, 223∼262, 일설에는 224∼263)은 자가 숙야(叔夜)다. 초군(譙郡) 질현(銍縣)(지금의 안후이성 수이시현 린환진) 사람이다. 그는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저명한 사상가이자 문학가이며, 음악과 서예 그리고 회화에도 능통했다. 신장이 7척 8촌(七尺八寸, 188센티미터 이상)으로 키가 크고 용모가 출중했으며, 성격이 솔직하고 품위가 있어 행동거지가 속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머니와 큰형 손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아주 총명해 책을 두루 읽었는데 특히 가학(家學)으로 여긴 유학과 관련한 책을 많이 읽었다. 하지만 장년이 되어서는 도가(道家)에 심취했는데, 청년 시절에 이미 노자와 장자를 스승이라 여기고 생활 태도도 염정무욕(恬靜無欲)의 길을 걷고자 노력했다. 이외에 각종 기예를 연마하면서 현학(玄學)·문학·음악·서예 등 여러 방면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20세(243)가 되어 하내(河內)군 산양(山陽)현에서 왕융(王戎)을 처음 보았고, 그때 죽림칠현의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정시(正始, 240∼248) 말년에는 완적(阮籍)·산도(山濤)·상수(向秀)·완함(阮咸)·왕융(王戎)·유영(劉伶) 등의 죽림 명사들과 현학(玄學)을 논하고 ‘명교를 뛰어넘어 자연에 몸을 맡긴다(越名敎而任自然)’라는 새로운 풍조를 선도해 죽림칠현의 정신적 영수로 자리 잡았다. 또한 이곳에서 여안(呂安)과 손등(孫登)을 만나 산림을 소요하며 청담(淸淡)과 현원(玄遠)을 논했고, 술 마시고 시를 지으며 자연을 노래했다.
죽림을 나선 후에는 태학의 경학(經學) 논쟁에 참가해 탁월한 재능과 학식 그리고 명사의 기풍으로 대단한 활약을 전개했다. 당시 태학을 주도한 왕숙(王肅)은 주공(周公)을 예교의 근거로 들어 사마씨의 정권 찬탈을 정당화했는데, 이에 <관채론(管蔡論)>을 지어 우회적으로 사마씨 집단을 비난했다. 이때부터 그는 특별 경계 대상이 되어 협박과 회유를 동시에 받았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태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혜강이 계속 회유를 거부하고 사마소의 정권 찬탈을 비난하자 사마소는 진노했고, 종회와 여손 등은 끊임없이 모함했다. 결국 혜강은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다.
옮긴이
심우영(沈禹英)은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타이완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 중문과에 교환 학생으로 입학해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상명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중문학회 회장, 한국중어중문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캐나다 UBC에서 방문학자로 1년간 체류했다. 또한 교내에서는 부총장을 비롯한 주요 보직을 두루 거쳤고, 특히 한중문화정보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주해 중국 지역학 연구에 매진했다.
저역서로는 ≪중국 시가 여행≫, ≪중국 시가 감상≫, ≪태산, 시의 숲을 거닐다≫, ≪형산, 시의 산을 오르다≫, ≪아미산, 시의 여행을 떠나다≫, ≪주자 시선≫ 등 다수가 있으며, 논문으로는 <소주 원림의 경명(景名) 연구>, <위진 원림시와 생활 미학> 등 수십 편이 있다.
현재 중국의 산수 문학과 죽림칠현 연구에 집중하고 있으며, 중국의 명산(名山)과 관련된 산수시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차례
고풍(古風) 한 수
수재로 천거된 형의 입대에 지어 보내다(贈兄秀才入軍) 열여덟 수
제1수 : 원앙 한 쌍이 하늘을 날며, 푸드덕 힘차게 날개를 치네(鴛鴦于飛, 肅肅其羽)
제2수 : 원앙 한 쌍이 하늘을 날며, 서로 짝을 향해 소리치네(鴛鴦于飛, 嘯侶命儔)
제3수 : 저 긴 강에서 떠다니다, 물가에서 잠시 쉬고(泳彼長川, 言息其滸)
제4수 : 저 긴 강에서 떠다니다, 모래섬에서 잠시 쉬고(泳彼長川, 言息其沚)
제5수 : 부드럽고 따스한 바람(穆穆惠風)
제6수 : 친근한 이는 어디에 있는가(所親安在)
제7수 : 사람 목숨은 짧지만(人生壽促)
제8수 : 내 친구는 어디로 갔나(我友焉之)
제9수 : 좋은 말은 이미 길들여졌고(良馬旣閑)
제10수 : 내 좋은 짝 손을 잡고(攜我好仇)
제11수 :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며(凌高遠眄)
제12수 : 가벼운 수레 타고 빨리 달리다(輕車迅邁)
제13수 : 가없이 넓은 거대한 물줄기가(浩浩洪流)
제14수 : 한 무리가 난초밭에서 쉬며(息徒蘭圃)
제15수 : 고요한 밤 스산한데(閑夜肅淸)
제16수 : 바람 타고 높이 노닐다(乘風高遊)
제17수 : 금과 시를 몸소 즐기다가(琴詩自樂)
제18수 : 속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해(流俗難悟)
마음속 깊은 울분(幽憤詩) 한 수
내 뜻을 술회하다(述志詩) 두 수
제1수 : 잠룡은 신령스런 몸집 키우면서(潛龍育神軀)
제2수 : 메추라기가 쑥대밭에서 마음껏 날면서(斥鷃擅蒿林)
선경에서 노닐다(遊仙詩) 한 수
육언시(六言詩) 열 수
제1수 : 상고 시대의 요임금과 순임금은(惟上古堯舜)
제2수 : 우·당 시대에는 도로써 다스렸으니(虞唐世道治)
제3수 : 지혜가 인위적으로 사용되면(知慧用有爲)
제4수 : 명성과 몸 어느 것이 가까운가(名與身孰親)
제5수 : 아등바등한 삶은 재앙만 초래할 뿐(生生厚招咎)
제6수 : 명성과 품행이 드러나면 근심만 더할 뿐(名行顯患滋)
제7수 : 동방삭은 지극히 청순해(東方朔至淸)
제8수 : 초나라 자문은 벼슬하는 데 능했으니(楚子文善仕)
제9수 : 노래자의 처는 현명했으니(老來妻賢明)
제10수 : 옛 현자 원헌을 감탄하노라(嗟古賢原憲)
대추호가시(代秋胡歌詩) 일곱 수
제1수 : 부귀영화는(富貴尊榮)
제2수 : 빈천하면 탈 없이 살기 쉽지만(貧賤易居)
제3수 : 공로를 세우고도 겸손하면 뉘우침이 적고(勞謙寡悔)
제4수 : 정신이 수고로운 자는 피폐해지고(役神者弊)
제5수 : 지혜 끊고 배움 버려서(絶智棄學)
제6수 : 왕자교와 더불어(思與王喬)
제7수 : 종산에서 배회하다(徘徊鍾山)
어머니를 그리워하며(思親詩) 한 수
두 곽씨에게 답하다(答二郭) 세 수
제1수 : 천하의 수많은 사람들은(天下悠悠者)
제2수 : 옛날에 아버지와 형 복을 타고나(昔蒙父兄祚)
제3수 : 복잡한 세상사 자세히 살펴보면(詳觀凌世務)
완덕여에게 주다(與阮德如) 한 수
술자리(酒會詩) 한 수
사언시(四言詩) 열한 수
제1수 : 잔잔히 흐르는 물(淡淡流水)
제2수 : 예쁜 저 원앙 한 쌍이(婉彼鴛鴦)
제3수 : 난초 핀 물가에서 노래하니(藻汜蘭池)
제4수 : 금(琴) 거두니 생각이 산만해져(歛絃散思)
제5수 : 솔솔 부는 가벼운 바람(肅肅冷風)
제6수 : 곱게 우거진 난초들(猗猗蘭藹)
제7수 : 흩날리는 흰 구름(泆泆白雲)
제8수 : 아득히 멀리 나는 난새는(眇眇翔鸞)
제9수 : 배가 솟았다 기울었다 해(有舟浮覆)
제10수 : 신선 되어 화산에 날아올라(羽化華岳)
제11수 : 가벼운 바람 산뜻하게 부니(微風清扇)
오언시(五言詩) 세 수
제1수 : 인생은 덧없어 아침 이슬 같고(人生譬朝露)
제2수 : 기나긴 밤 고요한데 할 일 없이(脩夜寂無爲)
제3수 : 세상 사람들과는 친할 수 없고(俗人不可親)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수재로 천거된 형의 입대에 지어 보내다(贈兄秀才入軍)> 제18수
속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해
외물을 쫓다 돌아오지 않네.
지인은 멀리서 살피다
자연으로 돌아가서는,
만물과 하나 되고
사해와 한집을 이루네.
만약 그대와 함께라면
내가 어찌 애석해하리.
삶이란 부평초와 같아
잠시 나타났다 홀연 사라지는 것.
세상일이 복잡하고 어지러워
오랑캐 땅에 버려졌도다.
못가의 꿩은 굶주려도
원림을 원치 않는데,
어찌 벼슬길에 능히 올라
몸과 마음을 고생시키나?
몸은 귀하고 이름은 천한 법
영욕이 어디에 있겠느냐?
뜻대로 하는 게 귀한 것이니
마음에 맡기면 후회가 없으리라.
流俗難悟, 逐物不還.
至人遠鑒, 歸之自然.
萬物爲一, 四海同宅.
與彼共之, 予何所惜.
生若浮寄, 暫見忽終.
世故紛紜, 棄之八戎.
澤雉雖饑, 不願園林.
安能服御, 勞形苦心.
身貴名賤, 榮辱何在.
貴得肆志, 縱心無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