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강 시집
수재로 천거된 형의 입대에 지어 보내다(贈兄秀才入軍) 제18수
流俗難悟, 속세 사람들은 깨닫지 못해
逐物不還. 외물을 쫓다 돌아오지 않네.
至人遠鑒, 지인은 멀리서 살피다
歸之自然. 자연으로 돌아가서는,
萬物爲一, 만물과 하나 되고
四海同宅. 사해와 한집을 이루네.
與彼共之, 만약 그대와 함께라면
予何所惜. 내가 어찌 애석해하리.
生若浮寄, 삶이란 부평초와 같아
暫見忽終. 잠시 나타났다 홀연 사라지는 것.
世故紛紜, 세상일이 복잡하고 어지러워
棄之八戎. 오랑캐 땅에 버려졌도다.
澤雉雖饑, 못가의 꿩은 굶주려도
不願園林. 원림을 원치 않는데,
安能服御, 어찌 벼슬길에 능히 올라
勞形苦心. 몸과 마음을 고생시키나?
身貴名賤, 몸은 귀하고 이름은 천한 법
榮辱何在. 영욕이 어디에 있겠느냐?
貴得肆志, 뜻대로 하는 게 귀한 것이니
縱心無悔. 마음에 맡기면 후회가 없으리라.
≪혜강 시집≫, 심우영 옮김, 55~56쪽
수재로 천거된 형은 누구인가?
혜희(嵇喜)다. 위나라 때 수재로 천거되었다. 30세 때 고평릉 정변으로 위나라의 실권이 사마씨에게 넘어간 후, 그들의 징집에 응해서 종군했다. 이후 진나라에서 태복(太僕)과 종정경(宗正卿)까지 올랐다.
혜강은 형의 종군을 반대하나?
“삶이란 부평초와 같”으니 “복잡하고 어지러”운 “오랑캐 땅”에서 “벼슬길에 능히 올라 몸과 마음을 고생시키”지 말라고 한다. 시 18수를 지어 헛된 명예를 버리고 자신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 유유자적하자고 권한다.
형의 답은 무엇인가?
답시(答詩)로 오언시 세 수와 사언시 한 수를 지어 자신의 처세 태도는 그와 같지 않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오언시 제1수에서는 노자와 장자의 관직 생활을 예로 들어 인생에서 변화란 바로 무상(無常)함에 기인한다 했고, 제2수에서는 통달한 자는 변통(變通)의 기능을 충분히 이해한다 했으며, 제3수에서는 도읍에서도 유유자적할 수 있으니 굳이 산속 깊은 곳이나 황량한 들판에서 은거할 필요는 없다 했다.
혜강은 누구인가?
위진 교체기의 시인이자 사상가다. 223년경에 태어나 262년경에 사망했다. 죽림칠현의 영수로 유명하다.
죽림칠현은 누구인가?
혜강을 비롯해 완적(阮籍)·산도(山濤)·상수(向秀)·완함(阮咸)·왕융(王戎)·유영(劉伶)을 말한다. 현학을 논하고 ‘명교를 뛰어넘어 자연에 몸을 맡긴다(越名敎而任自然)’는 새로운 풍조를 선도했다.
현학이란 무엇인가?
노자, 장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한 철학이다. 인륜의 명분을 중시하는 유가의 명교를 반대하고 무위자연을 주장한다.
유가의 명교를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마소의 정권 찬탈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였기 때문이다. 당시 태학을 주도한 왕숙(王肅)은 주공(周公)을 예교의 근거로 들어 정권 찬탈을 정당화했다.
일곱 사람 모두 생각이 같았나?
후에 사마씨의 회유로 변절하는 이가 생긴다. 산도는 상서이부랑(尙書吏部郞)에서 산기시랑(散騎侍郞)으로 관직을 옮기면서 그 자리에 혜강을 추천하기도 한다.
혜강도 회유를 받아들이나?
감당할 수 없는 일곱 가지 이유와 감당해서는 안 될 두 가지 이유를 담은 <산거원에게 보내는 절교 편지(與山巨源絶交書)>를 써서 절교를 선언한다. 이 때문에 결정적으로 사마소의 눈 밖에 난다.
무엇이 문제인가?
‘탕왕과 무왕을 비난하고 주공과 공자를 가볍게 본다(非湯武而薄周孔)’는 이유였다. 루쉰의 말에 따르면, 탕왕과 무왕은 무력으로써 천하를 안정시켰고, 주공은 성왕을 도와 섭정을 행했으며, 공자는 선양(禪讓)을 실천한 요순을 추앙해 뜻을 펼쳤는데, 이들은 모두 사마씨의 정권 찬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했던 인물이다. 이들을 비난하고 가볍게 보았으니, 이는 사마씨 집단에 대한 거부이자 도전이다.
도전의 결과는?
최고 권력자인 사마소는 진노했고, 종회와 여손은 이를 기회로 모함을 거듭했다. 여안 사건이 일어나자 이를 빌미로 무구검(毋丘儉)의 반란에 동조했다는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
여안 사건은 무엇인가?
여손이 동생 여안의 부인을 유혹해 내통하고는 동생의 보복이 두려워 불효죄로 누명을 씌웠다. 여안이 감옥에 갇히자 그들과 친하게 지내던 혜강은 여안을 변호하면서 여손에게 <여장제에게 보내는 절교 편지(與呂長悌絶交書)>를 보내 크게 꾸짖고 절교를 선언했다.
혜강의 최후는 어떠했나?
태학생 3000명이 사면을 요청하며 모였다. 하지만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함이 없었으며, 오히려 형 혜희에게 자신이 평소에 쓰던 금(琴)을 갖다 달라 해 형장에서 당시 최고의 명곡인 <광릉산(廣陵散)>을 연주한 후 태연히 처형당했다.
그의 시는 모두 몇 편인가?
60수다. 사언시 30수, 오언시 12수, 육언시 10수, 악부시 7수, 소체(騷體)시 1수다. 산문은 15편이 전하니, 전체 작품에서 시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
무엇을 노래하나?
인간 본래의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자연과의 일체화를 지향한다. 시공간의 초월적 존재인 신선을 앙모하며 양생론을 바탕으로 이상 세계인 신선 세계로 접근을 시도한다.
당신은 누구인가?
심우영이다. 상명대 중국어문학과 교수다.
2791호 | 2015년 11월 9일 발행
이 사람이 바로 죽림칠현의 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