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
2563호 | 2015년 4월 29일 발행
아버지 없이 아들 찾기
임혜경이 옮긴 조엘 폼므라(Joël Pommerat)의 ≪이 아이(Cet enfant)≫
내 아들 맞나?
죽은 자가 누구인가?
당신의 아들인가?
처음엔 그랬는데 다시 보니 아니었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어서, 그래서 아들인 줄 알았는데 옆집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그림자 없이 아들 찾기, 어려운 일이다.
마담 마르케르: 제 친구예요, 이웃에 사는데 같이 왔어요.
경찰: 이분은 같이 못 들어가십니다.
마담 마르케르: 같이 못 들어간다고요?
경찰: 네, 안 됩니다.
이웃집 여자: 괜찮아, 나 여기서 기다릴게.
경찰: 여기는 가족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마담 마르케르: (흰 천에 덮인 시체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나도 저 사람 가족이 아니죠…. 내 아들이 아니니까요, 내 아들일 리가 없거든요.
이웃집 여자: 가 봐. 보면 단번에 알게 될 거야.
경찰: 그러니 당신 아드님이 아니라는 걸 그냥 확인만 해 주시면 됩니다.
≪이 아이≫, 조엘 폼므라 지음, 임혜경 옮김, 69쪽
아들인가?
경찰은 죽은 사람이 마르케르의 아들일 거라고 추정한다. 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부정한다.
아들 맞나?
한참 주저하다가 시체를 덮은 천을 들어 확인한다. 처음엔 아들이 아니라고 하더니 곧, 아들인 것 같다며 통곡한다.
아니라고 하다가 그렇다고 하는 까닭이 뭔가?
얼핏 봤는데도 잊히지 않을 만큼 낯익기 때문이었다. 아들이 아니라면 그 얼굴이 자꾸 어른거릴 리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아들인가, 아닌가?
사실 마르케르의 아들이 아니었다. 경찰과 이웃집 여자의 권유로 다시 한 번 시체의 얼굴을 확인하다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웃집 여자의 아들이었다. 마르케르가 희망을 되찾고 이웃집 여자에게 절망이 닥친다.
누군가, 이 여인들은?
이혼하고 홀로 자녀를 키우는 이주 여성들이다. “사라지지 않는 아버지를 한번 만나 봤으면 좋겠다”는 대사는 오늘날 가정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가리킨다. 이런 주제는 이 작품의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이어진다.
어떤 에피소드인가?
이 작품은 가족을 주제로 10개의 에피소드를 엮었다. 가족이란, 부모란, 자식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가족 문제를 성찰하는 에피소드다.
오늘날 가족은 어떤 모습인가?
가난, 소통 부재, 애정 결핍, 단절, 파탄에 내몰린다. 미혼모, 이혼 부부와 자녀, 권위적 아버지, 폭력적 아들이 등장한다. 모두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가족을 묻는 이유가 뭔가?
2002년에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칼바도스 시의 가족수당금고와 캉 지방 노르망디국립극장이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폼프라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작가와 극단 배우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오늘날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토론했고 이것을 바탕으로 작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부족함을 무엇으로 채웠나?
여기에 자신의 관점을 붙이고 다른 작가의 작품도 참고했다. 인용한 에피소드는 영국 극작가 에드워드 본드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쓴 것이다.
공연은 성공했는가?
2003년 캉 지방 사회문화센터 대여섯 군데에서 조엘 폼므라 연출로 공연한 이후, 2006년에 파리-빌레트 극장에서 정식 공연되었다. 그 이래로 지금까지 150회 이상 재공연했다. 조엘 폼므라가 이끄는 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어 프랑스는 물론이고 러시아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활발히 공연 중이다.
한국 공연은?
지난 3월 카티 라팽 연출, 극단 프랑코포니 제작으로 선돌극장에서 초연했다.
조엘 폼므라가 누구인가?
자신을 희곡 작가가 아니라 공연 작가라고 불러 주기를 원하는 프랑스 극작가이자 연출가다. 이미 완성된 대본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서 자신이 이끄는 극단 배우, 스태프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 공연 텍스트를 만들어 가는 “토털 연극”을 지향한다.
연극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열여섯 살에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열여덟에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간다. 이듬해에 극단 테아트르 드 라 마스카라에 입단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낀다. 스물셋부터 독학으로 극작을 해 오다 스물일곱 되던 해인 1990년에 첫 창작극 <다카르 길>을 직접 연출한다. 이때 극단을 창단해 지금까지 운영한다.
작품 주제는?
개인과 사회, 노동, 가족, 권력, 사랑이다. 동시대 정치, 경제, 사회적인 제도와 권력 문제를 예리하고 독창적으로 다룬다.
연극에서 이룬 성과는?
2006년 <이 아이>로 평론가협회에서 주는 프랑스어 희곡 대상을 수상했다. 몰리에르상, 보마르셰피가로최고작가상, 대중연극공연대상을 받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혜경이다.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이고 극단 프랑코포니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