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어두운 가로수 길≫은 이반 부닌이 1937년부터 13년에 걸쳐 완성한 단편소설집으로, 작가 생애 마지막 시기에 관심을 가진 모든 문제를 담았다. 특히 작품들의 중심이 되는 주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다양한 음영이다. 부닌은 독창적인 방법으로 사랑이라는 주제에 접근하는데, 19세기 대다수 러시아 고전 작가, 예를 들어 투르게네프, 곤차로프, 톨스토이와 달리 육체적인 사랑의 접근과 묘사에 소홀하지 않았다. 부닌의 주인공들은 주저하지 않고 정욕의 폭풍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이해하게 되며 자신을 가차 없이 불태워 버린다. 자살하고 살해되는 비극적 이야기를 통해 부닌은 사랑이란 인간에게 모든 정신적·육체적 힘의 최고의 긴장 상태를 요구하기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사랑은 삶보다 귀하지만,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비극적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또한 ≪어두운 가로수 길≫은 다양한 소설적 장르의 모형이다. <캅카스>, <스테파>, <타냐>, <갈랴 간스카야>, <까마귀> 등 대부분의 작품은 심리·풍속 소설이고, <나탈리>, <루샤>, <파리에서>, <차가운 가을>, <깨끗한 월요일>과 같은 서정·서사시 장르의 이야기도 있으며, <참나무 마을>과 같은 작품은 민담의 형태를 띠는 설화에 가깝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은 ≪어두운 가로수 길≫의 통일된 작품 군으로 연합된다. 인간과 세상의 내면과 외면을 아우르는 다양한 문제가 하나의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고, 주제와 언어의 동질성은 순간 범람할 수 있는 그 이야기들을 다시 흐르도록 연결한다. 부닌은 다양한 장르의 작품 속에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고통과 복잡한 감정의 표출을 놀라운 필치로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 책은 1965년부터 1967년까지 러시아 예술문학(Издательство художественная литература)출판사에서 발간한 부닌 전집 제7권 ≪ТЁМНЫЕ АЛЛЕИ РАССКАЗЫ≫의 37개 작품 중 19개를 선별해 핵심적인 대목을 중심으로 전체 원전의 약 40%를 발췌했다.
200자평
이반 부닌은 ≪어두운 가로수 길≫을 두고 “내가 살아오면서 쓴 작품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고 독창적인 이야기”라고 말했다. 러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이반 부닌이 13년에 걸쳐 완성한 단편소설집이다. 사랑이란 감정의 다양한 음영을 보여준다. 작가는 사랑으로 인해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고통과 복잡한 감정을 놀라운 필치로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작품의 구성, 외부와 내부세계의 묘사, 삶과 사랑에 대한 통찰력 등 많은 면에서 부닌의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지은이
이반 부닌(Иван А. Бунин, 1870∼1953)은 1870년 10월 23일 러시아 돈 강 유역의 보로네시에서 태어났다. 부닌의 초기 작품에는 그가 체험한 아름다운 시골의 자연과 농민들의 삶이 자주 등장한다. 1900년에 ≪안토노프의 사과≫를 발표하며 문단의 관심을 끌었고, 1901년에는 두 번째 시집 ≪낙엽≫으로 푸시킨 상을 받았다. 특히 그의 생애에서 창조적인 창작 시기로 평가받는 1910년대에는 ≪마을≫(1910), ≪수호돌≫(1911),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1915)와 같이 문단의 주목을 받는 뛰어난 작품들을 발표한다. 그러나 1917년 사회주의혁명에 반대하며 1920년 프랑스로 망명한다.
망명 후 자전적인 소설 ≪아르세니예프의 생≫을 발표하고, 같은 해 1933년 러시아 작가 가운데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37년에는 톨스토이의 삶과 철학, 세계관 등을 조명한 회고집 ≪톨스토이의 해방≫을 출간한다. 그 후 부닌의 관심은 사랑과 고독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로 옮겨간다. 그리고 <어두운 가로수 길>, <파리에서>, <갈랴 간스카야>, <나탈리>, <깨끗한 일요일> 등 사랑의 다양한 음영을 담은 주옥같은 단편소설들을 발표한다. 작가가 추구해야 할 올바른 길과 진리에 대해 고민하던 부닌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조국으로 돌아오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1953년 83세를 일기로 파리에서 삶을 마감했다.
옮긴이
김경태는 이반 부닌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 러시아로 건너가 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 러시아문학과에서 지도 교수 이고리 니콜라예비치 수히흐 선생에게 사사해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에 돌아와 전북대학교, 조선대학교 등에서 전임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강의했고, 지금은 광주보건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이반 부닌의 소설 ‘어두운 가로수 길’에 나타난 장르의 문제>, <이반 부닌의 작품 속에 나타난 동양의 테마>, <이반 부닌의 단편소설 ‘형제들’의 동양세계>, <이반 부닌의 불교적 세계관>, <알렉산드르 그린의 환상소설>, <러시아 정교의 특성과 정치적 역할> 등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비밀의 나무≫, ≪마을≫, ≪수호돌≫, ≪차스뚜시까≫, ≪러시아 속요≫가 있고, 지은 책으로 ≪마인드맵을 활용한 재미있는 글쓰기≫가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어두운 가로수 길
캅카스
발라다
스테파
무자
루샤
조이카와 발레리야
타냐
파리에서
갈랴 간스카야
겐리흐
나탈리
첫사랑
참나무 마을
차가운 가을
사라토프 호
까마귀
깨끗한 월요일
유대의 봄날에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여보게, 모든 게 사라지는 거라네. 사랑, 젊음. 이 모든 게 말이야. 흔하고 평범한 이야기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법이야. <욥기>에 이런 구절이 있지? ‘네가 추억할지라도 물이 흘러감 같을 것이며.’”
“신이 누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모두의 젊음은 흘러가 버리지만 사랑은 별개의 문제지요.”
2.
갑자기 그가 죽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정말로 나는 짧은 시간 내에 그를 잊게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잊히는 거잖아….
3.
나는 모스크바로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당분간은 속죄와 순종의 예배를 드리고 다음에는 삭발례를 하게 될 거예요…. 신께서 당신 편지에 답하지 않을 힘을 주시길 바라요. 더 이상 우리의 고통을 연장시키거나 확대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에요….